차이밍량의 <행자> 시리즈 열한 번째 작품인 <더스트>는 『금강경』의 “여래란 어디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며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래라 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이 구절은 시리즈를 마주하는 관객에게 차이밍량이 건네는 충고이자 자기 다짐이다. 만약 당신이, 붉은색 승려복의 승려, 세계 각지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극도로 절제된 움직임으로서의 느린 걸음, 불쑥 등장하는 얼굴들의 클로즈업, 그리고 이것들을 담아내는 차이밍량의 영화적 스타일에 주목하고, 또한 이 시리즈가 선험적 시간을 체험 가능하게 한다는 등의 상투적 해석을 쫓으려 한다면, 당신은 눈앞의 여래를 기어이 놓치고 말 것이라는 충고. 또는 그 규정으로 자신의 영화를 구속하지 않겠다는 자기 다짐. ‘먼지’라는 제목은 “티끌이란 티끌이 아니기에 그 이름을 티끌이라 한다.”라는 『금강경』의 한 구절을 상기시킨다. 즉, <행자> 시리즈는 그에 대한 규정들로 환원될 수 없기에 <행자> 시리즈라 불릴 수 있다는 것.
말레이시아 출생의 대만 영화감독이자 미술가. 주요 연출작으로 <안녕, 용문객잔>(2003), <흔들리는 구름>(2005), <데이즈>(2020) 등이 있다. 2012년부터 ‘행자’ 연작을 이어오며 장편과 단편, 설치, 퍼포먼스 등 여러 형식으로 작업해왔다. 도시와 공간을 이동하며 시간과 신체의 움직임을 기록해온 해당 연작은 여러 국제영화제와 미술관에서 소개됐다. <더스트>는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을 배경으로 한 행자 연작의 열한 번째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