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가부키와 영화로 친숙한 권선징악의 《가나데혼 주신구라》가 아니라, 마야마 세이카가 철저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쓴 희곡을 영화화했다. 칼싸움이나 습격 등의 볼거리 요소를 배제하고, 등장인물의 심리와 갈등, 무가 사회의 권력으로 충만한 공간을 묵직하게 묘사한다. 실물 크기의 “소나무 복도” 세트로 상징되는 철저한 시대 고증을 통해 기존 시대극과 선을 긋는 “역사영화”로 완성됐다.
[후편] “쇼는 찍지 않는다”는 미조구치가 기라 저택 세트까지 완성해 놓고도 최대의 절정인 습격 장면을 직접 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후편. 젠신자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엄격한 몸가짐이 무가 사회의 논리와 아코 낭인들의 갈등을 부각한다. 영화 통제로 인해 고아 영화가 쇼치쿠에 흡수되면서 후편 제작은 쇼치쿠가 이어받았다.
상영본 제공: 일본국제교류기금
미조구치 겐지는 189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23년 데뷔한 뒤 《Kaminingyo Haru no Sasayaki》(1926)로 주목받았다. 《오사카 엘레지》와 《기온의 자매》(1936) 이후 베니스 영화제에서 《오하루의 일생》(1952)으로 국제상을, 《우게츠 이야기》(1953)로 은사자상을, 그리고 《산쇼다유》(1954)로도 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56년 58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