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북수마트라주 카로 지역. 네덜란드군과의 전투에서 다친 민병대원 루슬리는 촌장의 딸 티피의 간호를 받는다. 과거 이 땅에서 독립투쟁에 뛰어들었던 박티아르 시아기안은 당시 맺은 주민 및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살려 마을 사람들의 삶과 사랑, 노래, 땅의 풍경을 전투와 같은 시간 속에 놓은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만들어 냈다. 1958년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영화제에 출품됐지만, 1965년 이후의 반공 탄압으로 감독은 투옥됐고 작품도 오랫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딸이자 큐레이터인 붕가 시아기안의 오랜 조사 끝에 2023년 러시아 고스필모폰드에서 재발견됐다. 독립을 군대나 영웅의 이야기로 만들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탈식민화의 역사를 현재를 향해 여는 중요한 아카이브다.
1923년 빈자이에서 태어난 Bachtiar Siagian은 인도네시아 영화감독이자 좌파 문화단체 레크라(1950~1965)의 회원이었다.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3회 아프로아시아영화제를 담당했다. 영화감독으로서 Siagian은 자신의 영화적 리얼리즘을 제3세계의 사회적 현실에 뿌리내렸다. 그의 영화 대부분은 신질서 권위주의 정권의 반공 폭력으로 인해 유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