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 <코마>의 제작자로 알려진 펠릭스 드기브리의 데뷔작이다. 주연은 <추락의 해부>로 세계적 유망주로 부상한 밀로 마차도 그라너가 맡았다. “이 이야기는 끝에서 시작해 시작으로 끝난다”라고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은 <엄마와 창녀>의 프랑수아즈 르브랭이다. 또래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14세 소년이 작별의 편지를 쓴 뒤 사라진다. ‘이건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고 쓴 52통의 편지에 사람들은 그가 죽었을 거라 짐작한다. 요즘 보기 드물게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영화다. 16미리 촬영이 빚은 그윽한 색감과 복고적 질감은 영화의 분위기를 십분 살려낸다. 그 결과, 1960, 70년대에 트뤼포와 말이 연출한 소년기 영화가 함께 거론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시네필이라면 거기에 피알라나 외스타슈의 이름을 더할 것이다. 르브랭이 괜히 목소리를 제공한 게 아니다.
파리정치대학 재학 중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5월 이후>(2012)에 출연한 데 이어 미아 한센-뢰베의 <에덴: 로스트 인 뮤직>(2014)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 현장에서 만난 우고 비엔베누와 함께 제작사 리멤버스를 설립하고 <랑트르티앙>(2019) 등 여러 단편을 연출하며 연출자로서의 역량을 다졌다. 비엔베누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르코>(2025)를 공동 각본·제작하며 세자르상 최우수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첫 장편 연출작 <굿바이, 이놈의 잔인한 세상>은 2026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며, 배우에서 감독으로 화려하게 전향한 그의 두 번째 챕터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