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염증을 느낀 철학과 대학생 병태(김수철)는 집을 나와 떠돌다 간 경찰서에서 거지 민우(안성기)를 만나고, 그의 손에 이끌려간 사창가에서 창녀 춘자(이미숙)를 만나 사랑을 느낀다. 고향에 가고 싶다는 춘자를 사창가에서 빼돌려 도망을 시작한 셋은 가진 것 없이 무작정 남쪽으로 향한다. 시도 때도 없이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거지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라며 장광설을 펼치는 민우는 “고래를 잡을 거”라는 병태를 무시하지 않는다.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다가도 눈빛에는 짙은 절망이 배어 있는 민우는 과거 운동권 학생이었음이 은연중 드러나는데, 경중의 양극단에 있는 인물을 관객이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온전히 안성기의 공이 크다.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청춘을 연기하며 은유적으로 시대상을 보여준다.
1953년 대구 출생.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장편 데뷔한 뒤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등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꿈>(1990) 등으로 작품 세계를 넓혔으며, 1994년 배창호 프로덕션을 설립해 <젊은 남자>(1994), <러브스토리>(1996), <흑수선>(2001) 등을 제작·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