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일은 없지만 차마 버리지 못한 옛 명함 더미를 마주한 린 삭스 감독은 아마 그 안에서 흥미를 찾아내는 데 가장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그는 기억을 추적하는 탐정처럼 단서를 따라 인생의 어느 순간 스쳐 지나간 이들을 찾아 나서고, 심지어 명함을 법의학 연구실로 보내 남아 있는 지문과 DNA를 검사하며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 이름들을 추적하려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 여성과 검열을 당한 예술가부터 그의 삶을 바꾼 심리치료사까지, 그 짧은 만남들은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 영화 서사 방식을 이어 가며 기록과 재연, 시적인 내레이션 사이를 절묘하게 오간다. 그는 법의학의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라는 개념을 감정과 기억으로 확장해, 각각의 만남이 어떻게 개인의 삶의 경험으로 통하는 입구가 되는지 사유한다. 명함은 인간관계의 연장이 되어 겹겹이 포개지며 기억과 정체성, 사람 사이의 연결을 탐색하는 여정을 엮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