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앙골라 독립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한 트랙터 운전사가 비밀경찰에게 갑자기 거칠게 체포되어 수도의 감옥으로 끌려간다. 남편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아내는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업고 남편을 찾아 사방을 돌아다닌다. 시골에서 도시로, 집 앞에서 감옥 문 앞까지 이어지는 이 남편 찾기 여정은 곧 일어날 민족해방운동의 흐름도 하나로 잇는다.
사라 말도로르의 첫 장편 극영화로, 동반자이자 앙골라 인민해방운동 지도자인 마리우 드 안드라드와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제목은 수도에 있는 한 노동계급 지역을 뜻하며, 주민들은 감옥을 공격해 수감자들을 구출할 봉기를 준비하고 있다. 영화 촬영 당시 앙골라는 여전히 독립전쟁의 수렁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영화에는 직접적인 혁명 호소나 남성적인 전투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는 여성을 중심으로 이웃들의 은밀한 상호부조를 엮어 일상 속에서 저항을 빚어낸다. 명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 영화의 생생하고 촉각적인 영상이 강력한 힘을 지니며 긴 강처럼 아득히 흐른다고 극찬했다.
Ⓞ 필름 파운데이션의 세계영화 프로젝트와 볼로냐 시네테카가 Éditions René Chateau 및 사라 말도로르의 가족과 협력해 L’Image Retrouvée에서 복원했다.
선구적인 영화감독 사라 말도로르(1929–2020)는 반식민주의 고전 《삼비장가》로 여성영화사와 아프리카 영화사에 자리매김했다. 이 영화로 그는 “아프리카 영화의 어머니”와 “혁명적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들만으로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 4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든 그의 작품 세계는 네그리튀드, 범아프리카주의, 페미니즘, 공산주의 등 20세기의 주요 지적·정치적 운동과 긴밀히 궤를 같이하며 민중의 해방 투쟁을 끊임없이 기록한다.
과들루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연극인으로 경력을 시작해 1950년대 프랑스에서 전원이 흑인 배우로 구성된 최초의 극단 Les Griots를 공동 창립한 뒤 모스크바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했다. 이후 아프리카의 반식민주의 투쟁에 합류해 범아프리카 영화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동반자인 시인이자 MPLA 창립자인 마리우 핀투 드 안드라드와 함께 아프리카의 해방운동에 깊이 헌신했지만, 그의 작품은 선전과 영웅적 스펙터클을 피하고 노동, 노래, 지역 공동체의 연대, 여성의 참여, 문화적 연속성, 일상에서 혁명을 찾았다. 그는 평생 정체성과 국경, 영화 형식을 끊임없이 넘나들며 영화를 자유와 저항을 추구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흑인 의식에 뿌리를 두면서도 아프리카와 유럽, 흑인 디아스포라를 아우르며 독자적인 영화 언어를 구축했다. 그의 멘토 에메 세제르가 그에게 헌정한 다음 말보다 그의 평생의 작업을 더 잘 포착하는 말은 아마 없을 것이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억압과 소외에 맞서 싸우며 인간의 헛소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라 말도로르에게.”